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느긋하게 먹고, 적당한 공간에 주저앉아 책 좀 보다가 시간 되면 저녁 먹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군대를 ‘1’이라고 하자. 반대로 새벽잠을 쫓으며 야간근무를 서고, 뙤약볕 아래에서 진짜로 ‘피가 나는’ 훈련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TV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 잠드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부대를 ‘10’이라고 하면, 내가 있던 부대는 아무래도 1쪽에서 세는 것이 빠른 부대였다. 규모가 작은 부대여서 적어도 얼굴과 이름 정도는 모두 알고 지냈고, 병사의 전원이 대학을 나왔거나 나올 예정이었다. 훈련은 고되지 않았고, 새로 지은 생활관이 완공되자 일곱 명이 한 방에서 개인 침대와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한 채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대에도 악습은 존재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맞았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해야 했고, 다른 누군가는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지친 어느 아이는 조용히 목을 매기도 했다. 개중 올곧은 몇몇은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고쳐보려 했으나 도덕도 논리도 이성도 ‘군대니까’라는 말 앞에 무너져야 했다. 그것은 흡사 종교의 언어처럼 군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군대니까. 원래 군대는 그런 거고 그래야 하니까.” 모든 반박은 봉쇄되었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이 군대임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도대체 또래의 이 아이들은 어디서 군대가 그래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온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 어쩌고 하지만, 사실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가기 전부터 군대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가게 된다. 훈련소의 고된 훈련과 얼차려, 배치된 자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악습과 폐습에 대하여. 어쩌면 자대에서의 악·폐습은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입대 전에 사회에서 들었던 ‘군대란 말이야……’를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들은 공고히 세습된다. 원래 군대는 그런 곳이므로 욕설을 한다. 군대니까 쫌 그런 게 있어야 되니까 그러지 딴 데선 그러지 않는다. 그러나 도대체 왜?
“그래도 그런 게 완전히 없어지면 안 돼. 그러면 그건 군대가 아니지.” 갓 계급장 두 줄을 달았던 시절, 외박을 나와 투덜거리던 내게 제대한 벗이 말했다. 아득해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을까. 이등병과 일병들은 이 말로 스스로의 나약함을 위로하며 질끈 눈을 감고 버텨내고 있겠지. 상병과 병장은 같은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괴로웠던 과거를 보상받고 있을 것이다. 휴가로써 돌아온 사회에서도 이런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나 때는 더 했다. 그러니까 너도 참을 수 있다. 군대는 원래 …… 군인들은 사회 속으로 휴가를 ‘나오지만’ 사실 사회는 군대와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군대에 대한 도전 불가능한 신화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그곳의 억압을 합리화한다. 사회 곳곳에서 독초처럼 뿌리를 내린 군대에 대한 신화가, 결코 낭만일 수 없는 그곳의 현실을 미화한다. 수없이 진행된 제도적 개혁에도 - 물론 ‘좋아지고는’ 있지만 - 그곳에서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군대의 공고한 카스트를 인정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것. 설사 그것이 예비역의 여유가 되었건 군필자의 하소연이 되었건 결코 그곳의 비인간적 행위를 농담으로라도 정당화하지 않는 것. 그것이 군대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부대에도 악습은 존재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맞았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해야 했고, 다른 누군가는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지친 어느 아이는 조용히 목을 매기도 했다. 개중 올곧은 몇몇은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고쳐보려 했으나 도덕도 논리도 이성도 ‘군대니까’라는 말 앞에 무너져야 했다. 그것은 흡사 종교의 언어처럼 군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군대니까. 원래 군대는 그런 거고 그래야 하니까.” 모든 반박은 봉쇄되었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이 군대임은 결코 부정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도대체 또래의 이 아이들은 어디서 군대가 그래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온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 어쩌고 하지만, 사실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가기 전부터 군대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가게 된다. 훈련소의 고된 훈련과 얼차려, 배치된 자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악습과 폐습에 대하여. 어쩌면 자대에서의 악·폐습은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입대 전에 사회에서 들었던 ‘군대란 말이야……’를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들은 공고히 세습된다. 원래 군대는 그런 곳이므로 욕설을 한다. 군대니까 쫌 그런 게 있어야 되니까 그러지 딴 데선 그러지 않는다. 그러나 도대체 왜?
“그래도 그런 게 완전히 없어지면 안 돼. 그러면 그건 군대가 아니지.” 갓 계급장 두 줄을 달았던 시절, 외박을 나와 투덜거리던 내게 제대한 벗이 말했다. 아득해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을까. 이등병과 일병들은 이 말로 스스로의 나약함을 위로하며 질끈 눈을 감고 버텨내고 있겠지. 상병과 병장은 같은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괴로웠던 과거를 보상받고 있을 것이다. 휴가로써 돌아온 사회에서도 이런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나 때는 더 했다. 그러니까 너도 참을 수 있다. 군대는 원래 …… 군인들은 사회 속으로 휴가를 ‘나오지만’ 사실 사회는 군대와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군대에 대한 도전 불가능한 신화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그곳의 억압을 합리화한다. 사회 곳곳에서 독초처럼 뿌리를 내린 군대에 대한 신화가, 결코 낭만일 수 없는 그곳의 현실을 미화한다. 수없이 진행된 제도적 개혁에도 - 물론 ‘좋아지고는’ 있지만 - 그곳에서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군대의 공고한 카스트를 인정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것. 설사 그것이 예비역의 여유가 되었건 군필자의 하소연이 되었건 결코 그곳의 비인간적 행위를 농담으로라도 정당화하지 않는 것. 그것이 군대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태그 : 군대




덧글
freeway 2009/10/20 20:25 # 삭제 답글
악습과 폐습이 대를 잇지만가장 작은 일에 동참하는 후임들이
열에 하나라도 아니 백에 하나라도 생긴다면
더욱 더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
펜큐어님이
혹시 그 씨앗을 뿌려 놓고 제대하시지는 않으셨는지?
그렇담 자연스레 다음 할 일은..
물과 양분을 주는 것 이겠군요. (웃음)
펜큐어 2009/10/29 11:35 #
천천히 천천히, 계속 좋아지고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