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일상

 군대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기다림이다. 제대의 그날은 분명하게 약속되어 있었으나 앞당길 방법은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 수없는 병사들이 그러하였듯 남은 날의 수를 세어 하루하루 그 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남들보다 컴퓨터를 만질 기회가 많았던 나는 엑셀로 남은 일수와 견뎌온 나날을 계산하는 시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촌스럽고 강렬한 색상으로 점철된 그 그래프는 모두의 비웃음과 동정을 양분으로 느리게 자라났다. 바라본다고 남은 기간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이제 이만큼 했으니 앞으로 이만큼만 하면 된다, 그 이만큼은 그때의 이만큼에 비하면 별것 아닐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무하곤 했다. 견뎌온 시간이 계급을 규정하는 그곳은 확실하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장했으므로, D-day 카운터가 하나 둘 줄어들 때마다 나는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끝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버텨낼 수 있게 했다. 조금만, 이제 이만큼만 더 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만큼만, 그 절반만 더 하면 끝. 그렇게 시간을 희롱하는 내가 종종 비참해 보이기도 했으나.

 엑셀의 시트는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되었다. D-day라는 글자가 번쩍이는 화면을 보고 그 xls파일을 지웠다. 비로소 나는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카운터를 하나 단다. 변함없이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끝을 기다리는 마음을 달랜다. 바라볼 때마다 위로가 되었던 그 견고한 약속을 기억하며, 평등한 시간의 흐름을 믿으며.

 다만 그때와 지금의 카운터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노력에 의해 종료의 시점을 앞당길수도, 또는 무관심과 타협을 통해 그 시점을 무한히 연장할 수도 있다. 전자를 위해 싸울만큼 용맹하지는 못하나, 후자에 힘을 싣지 않기 위해 노력하리라. 카운터를 굳이 다는 것은 그 각오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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