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6일
님은 먼 곳에

(영화의 결말이 적힌 글입니다.)
영화는 모호하게 전개됩니다. 순이(수애 분)가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것 같은 남편을 찾아 떠나고, 그렇다고 순이가 남편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영화 속에서도 던져지는 질문입니다만, 왜 순이는 베트남으로 가서 남편을 그리도 애타게 찾는 걸까요.
순이는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고(아들을 낳아야 하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하는 여성입니다. 소박(?)을 맞고 친정에 갔더니만 아버지 되시는 분은 시집의 귀신이 되라며 다시 쫓아보내지를 않나, 시어머니는 아들놈이 바람을 피우는데 본처와 첩은 다르다며 외려 호통을 치지 않나. 잘 안 되는 사투리까지 억지로 써가면서 그 전근대성에 적응하려드는 순이의 모습이 많이 답답하게 그려집니다. 남편의 월남행은 순이에게 탈출의 기회를 제공하지요. 아들 찾으러 가겠으니 비키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답하는 "차라리 제가 갈게요."는 희생이 아닌 선언으로 읽힙니다. 순이를 옭아매고 있던 전근대성의 굴레를 벗어던질 기회가 온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순이는 변해갑니다. 첫무대에서 수지큐를 서툴고 부끄럽게 부르던 그는 나중에 가방에서 속옷을 군인들을 향해 꺼내 던지며 쇼를 이끌만큼 바뀌었어요. 초반의 그 시골 처녀는 온데간데없고 싱그럽게 웃는 '써니'만 화면에 보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찾겠다'는 강렬한 집착. 애증과 오기가 묘하게 섞인 그 모습이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갑니다. 결국 남편을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시원하게 남편의 따귀를 올려붙이는 결말은 그래서 깔끔합니다. 서로 끌어안고 눈물이라도 흘렸더라면 아마 다시는 이준익 감독 영화 안 봤을 테지요.
(+) 월남전에서 미군들이 들고 있는 총이 지금 제가 군대에서 들고 있는 총이랑 똑같더군요. 공군은 지금도 M16입니다.
(+) 9회말 투아웃 때도 그랬지만, 수애는 정말로 예쁩니다. 도대체 박상길은 뭐가 아쉬워 바람을 피웠을까요.
(+)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뒤로 미룹니다. 전쟁의 참상은 순이가 써니로 바뀌는 과정만큼이나 영화에서 중요하게 그려집니다.
# by | 2008/08/06 00:37 | 영화일지 | 트랙백(2) | 덧글(0)















